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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손쉬운 해결책] "이론을 갖추기 전에 섣불리 거대한 주장을 한 심리학 연구들"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3. 7. 14.

자존감, 그릿, 넛지, 긍정심리학, 무의식의 힘 같은 심리학계의 블록버스터급 아이디어들은, 엄청난 조회수의 테드(TED) 강연, 베스트셀러 도서, 단순한 처방, 전염성 강한 메시지 덕분에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들의 근간이 되는 과학의 상당 부분이 오류가 있다면 어떨까요? 뒤늦게 부실한 연구, 데이터 조작, 주장 철회, 재현 성공률 25퍼센트라는 불명예스러운 진실이 밝혀졌다면? 손쉬운 해결책은 저널리스트 제시 싱걸이 현대 심리학의 8가지 초대형 히트작(자존감, 긍정심리학, 그릿, 넛지, 무의식의 힘, 파워 포즈, 편견 검사, 청소년 슈퍼범죄자 설)을 전방위적으로 분석, 비평한 책입니다


심리학자 한민(아주대 심리학과)이 『손쉬운 해결책』의 저자 제시 싱걸을 서면으로 인터뷰했습니다. 

1. 당신은 저널리스트인데 대중 심리학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20대 때 저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두고 글을 쓰기보다는 사람들이 왜 무언가에 동의하지 않는지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러다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그의 도덕 기반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을 접했고, 이후 공공정책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인간이 어떻게 사실이 아닌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이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학문 중에서도 특히 행동경제학 분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통해 매우 의심스러운 아이디어들이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잡지 《뉴욕》에 이런 아이디어로 글 몇 편을 실었는데, 제 에이전트가 이걸로 책을 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2. 한국에서도 자존감, 그릿, 긍정심리학 같은 아이디어들을 다룬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미국에서는 교육이나 정책 등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지만 한국에서는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적 해결책이자 자기계발 도구로 많이 읽힙니다. 개인이 대중 심리학을 접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저는 자조나 자기계발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런 책들을 읽어 도움을 받았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거짓되거나, 입증되지 않은 과학적 주장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릿(끈기 혹은 인내)’과 다른 긍정적인 요인의 통계적 상관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약하며, 연구자들은 ‘그릿’을 향상시켜 성과를 높이는 신뢰할 만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릿’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마음 한구석에 간직할 수는 있겠지만, 데이터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특정 주장에 현혹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대중은 과학적 엄밀성을 따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과학적 기반이 허술한 심리학적 방법에 쉽게 현혹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전문가 집단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연구자들이 근거가 별로 없는 아이디어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해왔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유인이 있습니다. 모든 연구자가 자신과 소속 기관, 동료들이 널리 인정받기를 원하고, 연구 지원금을 받고, 테드(TED) 강연을 하길 바라는 것이죠. 그래서 연구에 ‘약간’ 손을 대고, 보도자료를 ‘약간’ 과장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어느새 이러한 행동이 습관이 되어 입증되지 않은 이론을 자신 있게 발표하는 연구자들이 생겨납니다.

 4. ‘행복’이 심리학 연구(과학적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있을까요? 행복과 같은 매우 문화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을 과학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있을까요?

 긍정심리학을 논한 장에서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을 깊이 다루지 않아 이 분야는 사실 잘 모릅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주관적인 개념은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은 주관적인 것이고, 이를 테스트하는 꽤 정확한 방법이 있으니까요. 저는 연구자들이 주제가 무엇이든 척도를 개발하고 타당화할 때 가장 모범적인 방식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의학 같은 분야에서도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해서 특정 척도가 잘 작동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책임을 져야 하고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당신의 척도는 정확히 무엇을 측정하는가?’ ‘이 척도는 어떻게 타당성을 띠게 되었는가?’ ‘3점 증가 또는 감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행복이란 주관적일 뿐 아니라 문화적 상대성을 띠는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행복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합니다. 이는 행복 연구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5. 자기(self)는 심리학에서 매우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심리학의 갈래마다 학자마다 달리 정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자존감(self-esteem)을 비롯해 자기와 관련된 개념들이 엄청나게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자존감을 비롯한 관련 개념들은 당신이 책에서 다룬 긍정심리학 연구의 종속변인(dependent variables)으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아직 합의되지 않은 개념에서 이렇게 많은 파생 개념이 나오고, 또 이런 개념들이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존감은, 연구자들이 데이터와 이론을 갖추기 전에 섣불리 앞서 나가서 거대한 주장을 펼친 좋은 예입니다. 미국에서는 자존감 커리큘럼이 일부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꽤 큰 부분을 차지했고,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기 훨씬 전에 이미 강좌와 서적 등을 통해 개별 소비자에게 판매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자존감 향상이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성적 향상이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 등을 둘러싼 인과관계조차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자존감 개입이 매우 중요하고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대중에게 주장하기 시작했죠.

이는 자존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또 다른 예로는 개인의 암묵적(무의식적) 인종 차별 수준을 측정하는 암묵적 연관 검사(IAT)가 있습니다. 이 검사는 암묵적 편견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를 효과적으로 측정할 방법이 있는지, 암묵적 편견이 어떤 인과적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매우 기본적인 질문에 연구자들이 답을 내놓기도 전에 미국에서 수천만 또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가 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엉망진창인데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과대 포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손쉬운 해결책> 저자 제시 싱걸.

 6. ‘손쉬운 해결책(quick fix)’에 대한 심리학 연구들이 양산되는 이유 중에 심리학계 자체의 문제는 없을까요? 이를테면 방법론이나 접근 방식 말입니다.

 저는 심리학의 역사나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회심리학이 인류학이나 사회학처럼 현장 연구 등을 수행하는 대신 실험실 환경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측정하는 데 집착하면서 무언가를 잃었다고 주장한 『미국 사회심리학에서 ‘사회’의 실종(The Disappearance of the Social in American Social Psychology)』이라는 책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에 집착하고 실험실에서 멋진 도구와 저울, 기기로 인상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 연구가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7. 당신 책을 읽고 나면, 긍정심리학을 비롯한 분야의 연구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회의를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특정 연구 분야가 모두 좋거나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긍정심리학 분야에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량하고 신중한 연구자들도 있고, 연구 결과를 과장하여 많은 돈을 벌어들인 부주의한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심리학계를 개혁하려는 이들은 ‘연구 사전 등록’, ‘데이터 공유’ 등 엄격한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많은 도구를 내놓았습니다. 따라서 개별 연구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연구 수행의 가장 높은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신중한 연구자들이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처럼 불공평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엄격한 연구 기준을 충족하려고 노력하는 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8. 지금은 구조와 권력 개념이 얄팍해진 ‘균열의 시대’이자, 기업과 정부가 자신이 진 위험을 국민에게 대량으로 떠넘기는 ‘위험 대전가의 시대’라는 진단을 하셨지요. 이런 시대적 조류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들은 사회를 이해하는 공동체를 좀더 중시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는 모든 사람이 거대한 힘과 사회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단위라는 통념이 있고, 바로 이 점이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손쉬운 해결책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부추기는 듯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학업 성적이나 진학 실적이 좋지 않은 이유가 개별 아동의 그릿 부족한 탓이라면 그릿개입을 통해 상황을 개선할 있겠지요. 그러나 이웃, 가정, 학교, 정치, 경제와 관련된 크고 복잡한 체제가 원인이라면, 이는 훨씬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겠지요. 경우 강력하고 포괄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손쉬운 해결책 선호하는 이유는, 이것이 쉽고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사회를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9. ‘손쉬운 해결책’으로 원하는 답(행복, 경영의 효율성, 연구의 용이성 등등)에 도달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어 영광이지만 저는 여기에 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가족, 기독교 교회나 유대교 회당, 혹은 이슬람 사원, 정당과 같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회구조에 속해 있을 경우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 위축되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았다면 두 번째 책을 썼을 테고, 대박이 났겠지요!

 10.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당신의 책이 한국인들을 보다 실질적인 행복의 길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이 ‘손쉬운 해결책’을 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제 책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을 인간의 행복 같은 심오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전문가로 묘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는 제 책에서 다룬 몇몇 주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오류에 빠지는 일이니까요!


제시 싱걸: 저널리스트. 《뉴욕 타임스》, 《애틀랜틱》, 《슬레이트》, 《보스턴 글로브》 등에 글을 쓰고 있다. 격주로 발행되는 종합지 《뉴욕》의 기고 작가로, 이 잡지의 온라인 자매지인 《사이언스 오브 어스》의 전 편집장이며 ‘블락트 앤 리포티드(Blocked and Reported)’ 팟캐스트의 공동 사회자이기도 하다. 로베르트 보슈 재단 장학생으로 베를린에서 수학했으며 프린스턴대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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