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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책 엿보기: 평균의 마음 3] 돈은 왜 쓰고 싶나: 스콧 피츠제럴드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1. 11. 15.

돈을 쓰고 싶은 충동은 본능일까

다들 아시다시피,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실제로 돈이 수중에 있고 없고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또한 벌기도 전에 쓸 궁리부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도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대부분 부자란 돈을 쓰는 데 비해 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막대한 시간을 투입하는 사람들인 것 같고, 보통 사람들에겐 계획이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이 스쳐가는 게 돈이다. 말하자면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각자의 지불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토록 비합리적인 욕망의 원인은 대체 뭘까.

그 답은 이미 20세기에 프랑스의 걸출한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명쾌하게 내놓았다. 현대의 경제사회 구조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도록 구축되었다. 자유로운 개인은 소비함으로써만 집단 및 세계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소비 양식의 차별화를 통해 신분제를 대체하는 사회적 계급/지위를 확인한다. 소비는 단지 경제행위가 아니고, 자본주의 시장의 기본인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따르지도 않는다. 현대인은 타인들의 욕망을 스스로에게 투사하고 소비 행위로 이를 충족함으로써 현존감을 얻고, 이상적 현실(가령 부자의 삶)을 모사함으로써 진부한 일상의 불안을 잠재운다.

상당 부분 옳다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이것만으로는 ‘돈은 왜 쓰고 싶은가’에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욕망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소비 욕구 자체가 인간의 기본충동 중 하나가 아닐까. 조르주 바타유는 그렇다고 한다. 바타유의 사상은 “합리적이고 위선적인 근대 부르주아와 배신당한 노동자 계급”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격한 주장을 담고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드러낸다. 바타유에 따르면 소비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본적 조건으로서의 소비”고, 다른 하나는 “생산 목적과 상관없는, 순수한 비생산적 소비”, 즉 “소모”다. 소모 행위의 대표적인 예로는 과시적 사치, 종교 및 장례 의식, 기념물 제작과 건립 그리고 공연 도박 예술 전쟁이 있다.

조르주 바타유. 출처: 위키피디아


합리성을 강요하는 현실세계로부터 멀어지는 환상

(스콧) 피츠제럴드에게는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선을 훌쩍 뛰어넘은, 마법에 가까운 부를 소유한 인물을 상상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에 바로 그런 부자가 나온다. 소박한 중산층 출신인 존은 재력가의 자제들이 다니는 보스턴 근교 사립 고등학교에서 퍼시 워싱턴이라는 소년과 사귀게 된다. 그리고 퍼시의 초대로 여름방학에 그의 고향집에 놀러 간다. 그런데 알고 보니 퍼시네 아버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워싱턴 씨의 저택이 서 있는 산 전체가 한 개의 거대한 다이아몬드기 때문이다.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되지만, 진짜로 그렇게 쓰여 있다. 부피 1세제곱마일, 즉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6킬로미터에 달하는,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라고.

펭귄판,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버질 버넷의 일러스트. 출처: https://ebay.to/3c0Aypv

피츠제럴드의 이 과함, 지나침, 허무맹랑함은 매혹적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꿈, 합리성과 적절성을 강요하는 현실세계로부터 아득히 멀어지는 경이로운 환상이 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조합을 통해 경험되지 않는 신비한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것, 판타지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독특한 욕구 중 하나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상징과 기호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피츠제럴드는 “세상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고, 인간이 소망하거나 꿈꿀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백색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부를 상상했고, 그 아름다움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다.

스콧 피츠제럴드. 출처: 위키피디아

예민한 감각으로 인간 내면의 변덕, 불안, 욕망을 간파해낸 작가,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인간 내면의 변덕 불안 욕망이라는 보다 은밀하고 근본적인 테마를 다루며, 위선의 베일로 애써 가린 속물성을 예민한 감각으로 간파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돋보이게 하는 작가적 사회성이 없었다.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자신의 안과 밖을 다 공개했기 때문에, 그의 존재 자체가 들키고 싶지 않은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이 되고 말았다. 동료 작가와 비평가 들은 그의 소설이 도덕적 책임감이나 예술적 목표를 가지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자세히 알았다. 그가 요란할 뿐 깊이 없는 작가라는 오명을 쓰게 된 데는 이런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소설가 피츠제럴드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실화失花」)라고 한 이상李箱의 스산한 독백에 걸맞은 삶을 살았고, 그의 작품에 대한 사후 재평가는 비밀을 아는 동료들도 모두 세상에서 사라진 후에야 온전히 이루어진다.


※ 이 게시물은 <평균의 마음: 저마다의 극단을 사는 현대인을 위한 책 읽기>(이수은 저)의 본문 내용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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