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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책 엿보기: 평균의 마음 2] 출세의 본질: 오노레 드 발자크 <잃어버린 환상>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1. 11. 12.

평생 성공과 출세를 꿈꾼 작가, 발자크 

고전에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발자크가 빚 때문에 하루에 커피를 50잔씩 마시면서 16시간씩 글을 쓰고, 채권자가 들이닥칠 때를 대비해 뒷문을 늘 열어두고 지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쩌다 그렇게 큰 빚을 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시는 듯하다. 발자크는 소르본 대학 법학과를 다니는 동안 파리의 엄청난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단지 돈을 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필명으로 발표했던 이때의 원고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가판대용 상업 소설과 대필, 단어 수로만 고료가 책정되는 시사칼럼 등이었다고 한다. 발자크는 일평생 성공과 출세를 꿈꿨는데, 그가 계획한 출세의 경로는 이랬다. 먼저, 사업으로 부를 축적하여 상층 부르주아가 된다. 그다음 결혼과 인맥을 통해 정계에 진출한다. 고위 관료로 재직하며 공로를 쌓아 훈장을 받고 최종적으로 백작이 된다.

발자크는 스물일곱 살에 처음 진지하게 장래를 도모하여 한 가지 사업에 도전한다. 당시 그의 후원자였던 공작부인에게 투자를 받아 인쇄소를 차린 것이다. 그는 인쇄출판 사업으로 거부가 되려 했다. 오늘날의 출판 관계자가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하겠지만, 그때는 이게 매우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잃어버린 환상』에는 발자크가 시도한 백만장자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소개되는데, 모든 부르주아 경제활동이 지역 귀족 및 관료 들과 결탁한 일감 몰아주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청이나 법원이 발주하는 각종 인쇄물과 《공보신문》을 독점하면 손쉽게 큰돈을 벌었다. 인쇄와 출판의 업무가 명확히 나뉘지 않았던 시대라 인쇄소 사장이자 출판편집인이었던 발자크는 베스트셀러를 꿈꾸며 잡지와 단행본 기획에도 손을 댔다. 그러나 겨우 2년 만에 6만 프랑의 빚을 지고 출판사를 접는다. 이때부터였다. 그가 자신의 본명을 걸고 소설을 써 호평받기 시작한 것은.

로버트 호가 1860년대에 만든 6-실린더 윤전기. 출처: 위키피디아

『잃어버린 환상』의 보트랭이 말하는 출세의 비결

〈인간희극〉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은 (익명을 제외하고도) 총 2472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주인공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에 되풀이해 등장하는 인물, 즉 작가의 의식과 무의식을 평생 지배한 유의미한 존재들이 있다. 한 사람은 범죄자인 보트랭이고, 다른 한 사람은 훗날 위대한 작가가 될 대학생 청년 다니엘 다르테즈다. 보트랭은 발자크의 어린 시절에 깊은 상처와 영향력을 남긴 엄마와 그 연인의 변신이고, 다르테즈는 발자크가 소망한 자신의 이상적 페르소나다. 이 둘은 발자크의 양면성, 어둠과 빛, 추락과 상승을 재현한다.

‘불사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트랭은 변장의 귀재고 여러 가명을 사용해서 그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실 그는 혁명기 프랑스에서 저질러진 모든 유형의 불법을 섭렵한 사기꾼이요 수완가다. 『고리오 영감』에서 보트랭은 외젠에게 300만 프랑짜리 사기 결혼의 동업을 제안하지만, 고리오 영감의 간곡한 우정이 외젠의 일탈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잃어버린 환상』에서는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뤼시앵을 고작 1만 2000프랑으로 낚아채 자기 마차에 태우는 데 성공한다.

보트랭은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려던 뤼시앵에게 “젊은이들의 행운이 시작되는 것은 미래에 대해서 가장 절망하는 때”이니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라고 다독여주며 출세의 비결을 가르친다. 인간들을 도구로만 여겨라. 그가 너의 굴종에 비싼 대가를 치러줄 때까지는 그와 헤어지지 마라. 몰락한 자는 마치 그가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무시해라.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면, 세상에 복종하고, 세상을 잘 연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 출처: 위키피디아

출세의 본질이 궁금하다면 발자크를 보라

51세라는 이른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발자크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양의 소설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써서, 프랑스 작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 수를 보유하게 되었다.(발자크의 〈인간희극〉 시리즈에 포함된 완성작만 90여 편이다.) 상류층을 선망했던 그는 잠시도 사치와 방탕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인기 작가가 되어 얼마간 숨통이 트이자 우라질 사업병이 도져 파인애플 농장을 만들다 실패했고, 급기야는 빚 때문에 기소되었는데 또 다른 백작부인이 대신 갚아주어 채무자구치소 수감을 겨우 면하기도 했다. 그가 더 열렬히 성공과 부를 원할수록 그는 한층 심각한 재정 파탄에 처했고, 그래서 자신이 즉시 발휘할 수 있는 돈벌이 재능인 소설 쓰기에 매진해야 했다.

발자크에게 문학은 위대한 정신의 작용이어서 세속적 존재증명을 위한 수단일 수 없었다. 그가 돈만은 기필코 자본으로 벌고자 했던 건 예술을 향한 그의 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갓 출현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유산이 아닌 창출되는 부의 가능성은 알아보았으나, 그 작동 원리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이 나아가려는 방향에 무지했으며, 무자비한 착취를 실행할 만한 성정도 가지지 못했다. 가장 가슴 아픈 어리석음은, 그가 비단장수도 후작이 되던 시대를 살았기에, 사회가 예술가에게 허락하는 최대치의 보상에 걸맞도록 목표를 하향조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탁월성에 만족하기엔 넘치도록 천재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출세의 본질이 궁금한 야심가들에게 발자크만 한 반면교사가 다시없다.


※ 이 게시물은 <평균의 마음: 저마다의 극단을 사는 현대인을 위한 책 읽기>(이수은 저)의 본문 내용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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