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책 엿보기

[책 엿보기: 평균의 마음 1] 경험이 말해주는 것 그리고 미친 꼰대를 피하는 방법: 찰스 디킨스 <어려운 시절>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1. 11. 11.

꼰대란 무엇인가

일상에서 혼용되는 꼰대의 규정은 세 범주로 나뉜다. 첫째는 꼰대의 사전적 정의에 따라,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해서 “우리 때는”으로 끝나는 푸념을 늘어놓는 어르신을 가리킨다. 세대 차를 빌미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때, 늙은이는 꼰대가 된다. 둘째 범주에는 교육적 의지가 추가된다. 청하지 않은 충고로 남을 가르치려는 연장자는 조언의 내용이 옳건 그르건, 합당하건 부당하건, 아무튼지 꼰대다. 꼰대가 ‘선생을 일컫는 은어’인 이유다. 마지막 범주는 한국의 현대 노동사에서 급격히 발달한 영역으로, 꼰대 선배, 꼰대 상사, 꼰대 사장의 횡포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세 범주의 꼰대가 공통으로 내세우는 근거는 경험이다.

경험은 인간이 외부 세계를 지각 추론 판단하는 과정에서 축적되며, 반복과 학습을 거쳐 일반화되면 지식의 지위를 얻는다. 경험지식은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지식이고 누구든지 평생 얼마간 자기만의 경험지식을 형성하지만, 조건과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에서 인과율에 취약하다.

내가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경험지식의 불확정성이 이토록 자명한데도, 꼰대의 경험론은 언제나 예외 없이 절대주의적 경향을 띤다. 그분의 ‘경험’은 우리에게 '행동강령’으로 하달되며,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어서는 안 되고 이의제기나 반박도 용인되지 않는다. 흄의 제안대로라면, 경험론자인 꼰대는 ‘불변의 진리’의 불가능성을 깊이 이해하고 역지사지와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상대를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정확히 그 반대로 한다.

찰스 디킨스. 출처: 위키피디아

『어려운 시절』의 두 꼰대

찰스 디킨스의 소설 『어려운 시절』에는 극악한 꼰대 신사가 둘씩이나 등장한다. 동갑내기인 그래드그라인드 씨와 바운더비 씨는 효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공리주의자요 실증주의자로, 19세기 영국의 산업화와 기계화를 견인하는 선도적 공업 도시 ‘코크타운’의 지도자들이다. 국회의원이자 학교 설립자인 그래드그라인드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단단한 영혼이라도 거뜬히 ‘갈아버릴grind’ 만한 경험론적 확신의 소유자다. 그는 통계와 사실만을 신뢰하며, 법과 원칙의 첫째 기준은 비용 대비 편익, 요즘 말로 가성비여야 한다고 믿는다.

한편, 코크타운의 여러 공장 상점 식당 은행의 소유주인 바운더비는 자수성가한 부자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져 “낮에는 도랑에서 밤에는 돼지우리에서” 살았다는 그는 양말이 뭔지도 모를 만큼 비천했다. “누구도 그에게 밧줄을 던져주지” 않았으나, 오로지 제 노력과 능력만으로 진흙탕에서 기어 나왔다고 ‘믿는’ 그는 “나의 성공에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 말고는 없다.”고 단언한다.

『어려운 시절』은 “탁월하게 실제적인” 이들 두 신사의 신념과 원칙이 현실에 철두철미 적용될 때, 과연 그 세계는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를 상상해본, 일종의 사고실험 같은 소설이다.

19세기 런던의 슬럼가.&nbsp;출처: https://bit.ly/3F5hfYu

꼰대를 피하는 법

꼰대질의 본질은 기득권자가 자신의 지배 권력을 확인하는 절차고, 권력은 피지배자들의 거듭된 승인을 통해 더욱 강화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아주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어려운 시절』에서 유일하게 해피엔딩을 맞는 소녀 씨씨 주프가 통쾌한 해결책을 알려준다. 씨씨는 곡마단 광대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나 그래드그라인드의 공리주의적 사명감 덕분에 구제되어 그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무지하고 해맑은 씨씨를 자기 식으로 교육하려고 그래드그라인드는 여러모로 노력한다. 하지만 씨씨를 가르치려는 그의 집념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한 나라에 5000만 파운드의 돈이 있다면, 너는 부자 나라에서 사는 것 아니냐? 글쎄요, 제 돈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100만 명이 사는 도시에서 굶어죽는 사람 수가 연간 25명이라면 이 비율은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굶어 죽지 않는 사람 수가 아무리 많아도 굶어 죽는 사람 입장은 힘들겠지요.

매사 이런 식이다 보니, 그래드그라인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씨씨에게 “너는 공부를 계속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판정을 내리고, 이에 씨씨는 “그럴 것 같아서 저도 걱정이에요.”라고 공손히 답한다. 어쩌면 우리는 능력 이상으로 노력하는 학생의 자세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실제의 우리가 얼마나 학습되기 어려운 존재인지를 고백함으로써 꼰대에게 체념하는 법을 가르쳐주자.


※ 이 게시물은 <평균의 마음: 저마다의 극단을 사는 현대인을 위한 책 읽기>(이수은 저)의 본문 내용 일부입니다. 


도서 상세 정보 및 구매 

예스24 https://bit.ly/3wBxCt6

교보문고 https://bit.ly/304xgiR

알라딘 https://bit.ly/3khEeaQ

인터파크 https://bit.ly/3BXVAjc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