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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한국사 영화관 2] 조선 시대 예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9. 2. 4.

이 글은 '36편의 영화로 읽는 교양 한국사' <한국사 영화관>(전 2권)을 재구성한 포스팅입니다. 총 4회에 걸쳐 전근대, 근현대 한국사를 간략하게 훑어보겠습니다!

 

광대 × <왕의 남자>

 

2005년 말에 개봉해 1000만 관객 몰이로 흥행 신드롬을 일으킨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는 조선 초기 연산조의 정치적 상황 속에 광대라는 인물을 묘하게 섞어 넣어 매우 빼어나게 만든 팩션 작품이다. 

공길(이준기 분)의 마성적 매력과 장생(감우성 분)의 예술혼과 광대들의 공연 장면으로 시종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 <왕의 남자>는 공길이 궁중에 발탁되면서 임금(정진영 분)과 공길과 장생, 이 세 명 사이에서 생긴 미묘한 감정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생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임금 연산군(燕山君, 재위 1494~1506)과 공길은 실존했던 인물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겉으로는 폭군이지만 그 이면에 가련한 정체성을 가진 왕의 초상을 광대의 연회를 통해 보여 준다.

조선 시대 광대들은 매우 미천한 위치에 있었지만, 나례에 동원 되어 공연을 하는 중요한 예인이었다. 나례는 원래 음력 섣달그믐에 하는 국가적인 액막이 행사인데 중국의 사신 영접이나 왕의 개인적인 연회 등에서도 행해졌다. 이 행사에 전국에서 실력 있는 광대들이 불려 나왔다. 

유랑 예능인 집단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다. 이 집단을 고려 시대에는 양수척(楊水尺), 재인(才人)이라고 불렀다. 떠돌면서 공연하는 이들이 때로는 도축을 해 주고 밥을 받아먹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렇게 산 것은 이들이 한반도 토착민이 아니라 8~9세기경 북방에서 들어온 유목민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여진족이 많았지만 그중에는 타타르인들도 있었다. 

 

김홍도의 <평양감사 향연도> 일부, 국립중앙박물관. 계단과 공연장에 사자탈을 쓴 광대가 있다.

 

조선 초에는 이들을 정착시키려는 시도로 신분을 승격해 주기도 했지만, 하는 일이 변하지 않아 차별은 여전했다. 일부 양수척은 한양에 정착해서 성균관 제사에 필요한 도축을 하는 반인(泮人)으로 변신해 성균관 인근에 반촌(泮村)을 형성하고 살았다. 그들은 도축업과 경중우인(京中優人: 우인은 재인과 같은 말로, 서울에 사는 우인이라는 뜻)을 겸해 한양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공연도 한 것 같다. 공길이 바로 이런 경중우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공길에게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타타르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면 그는 영화 속 공길처럼 수려하고 당당한 풍채에 왕 앞에서 단독 공연을 할 정도로 총애받는 예인이었을 것이다. 

 

기생 × <황진이>

 

2007년에 개봉한 <황진이>(감독 장윤현)의 독특한 점은 북한 소설가 홍석중의 『황진이』가 원작이라는 데 있다. 홍석중은 소설 『임꺽정』으로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벽초 홍명희(洪命憙, 1888~1968)의 손자로 북한에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작가다. 홍석중의 『황진이』는 조선 시대 양반의 시각에서 전승되던 황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체하고, 가공인물 ‘놈이’를 황 진사 댁 노비로 내세워 그와 기생 ‘황진이’의 비극적 사랑을 그려 낸다. 

영화에서는 자신이 양반인 줄 알았던 황진이가 노비 출신 첩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기생이 되는 것으로 나온다. 기생, 즉 기녀는 천민 계급에 속했다. 그러므로 황진이가 기생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스스로 천민 신분으로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황진이>에서. 조선 중종 때 기생 황진이는 조선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의 예술가’다.

조선은 남성의 성적 방종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하면서도 여성들은 정조 관념으로 옭아매어 성적으로 억압하는 사회였다. 특히 교육을 받은 여성, 즉 양반가의 여성들은 규방(閨房)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자신들의 재능과 욕망을 거세당한 채 식물처럼 살다 죽어야 했다. 그에 비해 신분은 낮지만 양반가 규수 정도 혹은 그 이상의 교양을 쌓을 수 있고 삶의 폭도 비교적 넓은 사람들이 바로 기생이었다. 

 

신윤복의 <청금상련>,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조선 시대 기생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로 소비되던 불우하고 슬픈 계급의 여인들이었다.

기생은 노비, 그중에서도 사치(奢侈)노비에 속했다. 주로 풍류를 즐기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번 기적(妓籍)에 올라가면 노비와 마찬가지로 천민이라는 신분적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천한 일을 한다 해서 팔천(八賤)에 들어갔다. 팔천은 양인보다 낮은 여덟 가지 천한 신분, 즉 사노비·승려·백정·무당·광대·상여꾼·기생·공장(工匠: 수공업에 종사하던 장인. 관공장官工匠과 사공장私工匠으로 나뉜다)을 일컬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황진이나 매창(梅窓) 등 문예로 이름을 드날린 기생 때문에 조선 시대 기생을 전문직 여성 혹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은 탁월한 여성 직업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선 시대 기생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로 소비되던 불우하고 슬픈 계급의 여인이었다.  

 

도화서 화원 × <미인도>

 

조선 후기 풍속화 가인 신윤복(申潤福, 1758~?)이 여성이라는 설에 기대어 만들어진 영화 <미인도>(2008년 개봉, 감독 전윤수)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여성성을 감추고 남자가 되어야 했던 신윤복(김규리 분)이 강무(김남일 분)와 사랑하며 자신의 본성과 예술적 개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여기에 18세기 말 정조 대 초기의 사회상과 다소 경직된 문화 정책 속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이 느끼는 고뇌 등을 잘 섞어 넣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역사적인 증거는 없다.

영화 <미인도>의 한 장면. 신윤복 여성설은 그의 그림이 다른 남성 화가의 그림에 비해 선이 가늘고 섬세하며 소재가 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생긴 가설이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金得臣, 1754~1822)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불린 인물이다. 그는 풍속화뿐 아니라 중국 남종화(南宗畫: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현에 치중한 그림 경향)풍 산수화나 새와 짐승을 그리는 데도 뛰어난 직업적인 화가였다고 알려져 있다. 

신윤복 개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지만 그의 집안은 조선 후기 화가 가문으로 꽤 유명했다. 신윤복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조부도 화원이었고, 작은할아버지도 당대 유명 화원이던 신일흥(申日興)이다. 말하자면, 신윤복은 가계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은 모태 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화원은 중인 계급으로, 도화서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출세였다. 도화서 화원은 주로 국가 행사와 왕의 초상화를 그리 는 기록화가로서 활동했다. 오늘날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는 기록사진가와 같다고 할까? 이들은 개인의 취미와 의뢰에 따라 산수나 화조, 풍속을 그리기도 했다. 화원의 개인적 그림은 도화서 인근에 있던 그림 가게에서 팔려 나갔다. 당시 정식 그림 가게가 있었다는 것은 그림을 향유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도화서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있었다. 그리고 중인인 화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은 종6품 별제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도화서에 그림을 배우는 생도 열다섯 명을 배치해 화원을 양성하게 하고, 국가의 각종 의식이나 행사 그림과 초상화 그리는 일을 담당하게 했다. 1746년(영조 22)에는 화원의 임무가 증대되면서 생도가 서른 명으로 늘었다. 

 

신윤복의 <선술집>,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남성적이고 토속적인 김홍도에 비해 신윤복은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도회적인 소재를 그렸다.

영화에서처럼 신윤복이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그의 가문과 그가 그린 그림의 성취도로 보아,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인간의 감정을 담은 그의 그림이 당시 유교 이념을 중심으로 문화를 이끌어 가고자 하던 정조의 문화 정책과 맞지 않아 도화서에서 쫓겨났을 것이라는 속설이 전한다. 영화 <미인도>도 이 부분을 주요한 갈등의 축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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