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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산다는 일의 위대함에 숨죽이다" -#헨미_요 #먹는_인간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7. 3. 23.

"오감에 의존해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영역에 숨어들어 보면

도대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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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헨미 요, 

그가 이방의 도시에서 건져 올린 장대한 식(食)의 인간 드라마


‘먹다’라는 주제로 ‘생(生)의 근원’을 탐구한 명저. 이 책은 교도통신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헨미 요(辺見庸)가 1992년 말부터 1994년 봄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과 음식에 관한 현장 보고로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교도통신 칼럼으로 연재되던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키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된 후에 비평가들의 절찬을 받은 저자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저자는 ‘먹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역사, 정치, 사회적으로 분쟁을 겪었거나 여전히 위험과 갈등이 산재하는 방글라데시, 베트남, 필리핀, 독일, 크로아티아, 소말리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한국 등 15개국을 찾았다.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활력이 넘치게 먹는 행위에 열중하는 사람들, 민족과 종교도 어쩌지 못하는 맹렬한 식욕의 굶주린 사람들, 전쟁의 공포에 짓눌려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삶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이 간직해온 이야기와 기억을 나누어 받아먹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함몰된 풍경을 끝까지 추적하는 기자의 본능적인 감각과 작고 미미한 것들을 읽어내는 작가의 섬세한 눈길이 결합되어 있는 책이다. 그 덕분에 “너덜너덜한 인간세계”의 풍경에서 저자가 포착한 ‘먹는 인간’의 모습은 애잔하고 슬프지만 풍요롭고 아름답다. 저널리즘과 문학이 아름답게 결합된 책으로 여행기나 취재기를 넘어서는 오묘한 빛과 질주하는 힘, 그리고 팽팽한 긴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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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어라.”

거시에 함몰된 미시적 풍경을 찾아 떠난 2년의 기록


저자는 교도통신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특종을 연거푸 터뜨리다가 결국 중국 공안의 감시를 받고 국외 퇴거 처분을 받았을 정도로 집요한 기자 정신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분노와 슬픔을 제거한 채 냉정하고 재빠르게 세상을 분석하는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타자의 기쁨, 괴로움, 신음을 느끼지 못하게 온몸이 차단된 듯 감각의 마비 상태가 왔기 때문이다. 몇십, 몇백 줄의 기사로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은 자만과 오만의 대가라고 여겼다. 2년여 간 세계를 떠돌며 1주일 동안 취재하고 글을 쓴 뒤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지속한 것은 이렇듯 잃어버린 신체성을 되찾기 위한 저자만의 지독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즈음 ‘기갈’과는 거리가 먼 일본의 ‘포식’ 상황도 저자의 여행을 부추겼다. 광풍처럼 몰아친 미식 열기에 혀와 위는 점차 값비싸고 고급스런 맛에 길들여졌다. 지금, 여기 한국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다. 게다가 일본은 모든 가치와 의미를 상품화와 소비로 환원해버리는 고도의 소비 자본주의 사회. 이 사회에서는 사람이 먹고사는 일의 본래 가치와 의미도 벗겨 버린다. ‘식(食)’의 본질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먹는 행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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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전쟁, 재해, 빈곤의 현장에서 마주친 

속절없이 애절한 식(食)의 장면들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인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은 『미식 예찬(Physiologie du gout)』에서 “짐승은 먹이를 먹고, 인간은 음식을 먹는다. 교양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먹는 법을 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사람도 가끔 짐승과 똑같이 ‘먹이를 먹는다.’”라고 답한다. 잔반(殘飯)을 먹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빈민, 에이즈에 감염되었지만 달리 먹일 게 없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우간다의 엄마와 아기,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체르노빌 사람들……. 이들에게 먹는 일은 음식의 부패, 감염, 오염 여부를 떠나 생존을 건 절박한 사투다. 

그럼에도 음식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잊게 해주고 영혼의 위로가 되는 것은 없다. 저자는 1994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한 위안부 할머니들(김복선, 이용수, 문옥주)이 또다시 자결하는 일을 막기 위해 10여 일간 이들을 따라 다닌다. 죽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 그들도 밥을 먹는다. 50년 전 퍼석퍼석한 밥과 된장국, 단무지를 허겁지겁 먹고 나면 끝도 없이 시작되던 그 일이 ‘끼니’를 먹는 동안에는 잊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저자는 울면서 “그래도 드십시오. 언제까지고 밥을 드십시오.”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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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와 종교, 권위주의의 억압에 

틈새와 균열을 내는 ‘먹는 쾌락’을 포착해내다 


‘먹는 것’만큼 인간에게 쾌락을 주는 것도 없다. 왜 감옥, 종교, 독재자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식욕’을 관리하려 드는지 보라. 그러나 식욕은 억누르기 쉽지 않다. 언제든 틈새를 찾아 정직하게 분출한다. 통일 전 동독이 운영하던 브란덴부르크 교도소를 찾은 저자는 채소의 풍미가 빠지고 짠맛만 나는 ‘죄인의 식사’를 함께한다. 이들이 형편없는 식사에 길들여진 듯하지만 감자를 훔쳐서 몰래 술을 만들어 마신다. 폴란드 공산정권의 마지막 독재자인 야루젤스키 전 대통령은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 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기 위한 목적일 뿐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은 후 ‘와플’의 맛을 알아버렸다고 죄의식 가득한 목소리로 저자에게 고백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 사이에 피로 피를 씻는 분쟁이 한창일 때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난민 급식소를 찾은 저자는 예순여덟 살의 이슬람 여성 니콜라가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 먹는 모습을 본다.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먹고사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먹다’라는 인간의 필수불가결한 영역으로 파고들어가서 저자가 본 장면들은 이렇듯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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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읽는 기분을 전해주는 

문학적 필치의 글들


이 책이 가진 펄떡이는 생명력, 관능성은 저자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맹렬하고도 활력 넘치게 먹는 인간들 덕분이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호찌민으로 가는 열차를 탄 저자는 난파선 화물창 같은 곳에서도 어떻게든 자세를 잡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48시간을 보낸다. 정차할 때마다 먹을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우르르 차 안에 밀려들어와 땀에 젖은 손이 음식을 건네고, 지폐가 날아다니는 풍경은 그 무엇보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필치로 쓰였다. 또 폴란드 탄광마을에서 맛본 수프 보그라치, 아드리아 해의 고기잡이배에서 먹은 정어리, 러시아 이투루프 섬에서 먹은 우하(생선) 수프에 관한 일화는 ‘먹는 인간’과 ‘먹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한없는 애정을 담고 있다. 탄탄한 구성의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을 주는 이 문학적 필치의 글들은 저자가 세계 도처에서 만난 애처롭고 슬픈 ‘먹는 인간’의 장면을 넘어, 결국 인간에게 먹는 행위가 얼마나 순수하며 정직한 일인지, 그리고 먹고 살아가는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지를 아름답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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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언론의 극찬을 받은 화제의 책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동시에 슬픈 미식(美食)기를 읽어보지 못했다. 여기서 미식은 입에 달고 혀에 감미로운 음식을 가리키지 않는다. 방글라데시의 쓰레기 음식부터 체르노빌 원전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식사 그리고 인육까지 온갖 상상을 초월한다. 자, 이게 미식이라고? 그런데 묘한 음식들 뒤에 깔린 이야기가 곁들여지면 이것은 힐링이자 미식이 된다. -동아일보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진짜 음식을 찾는다. 예리한 관찰과 차분한 서술로 '이런 삶의 모습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삼시세끼는 관성적인 식사가 아니라 영혼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언젠가부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만 집중했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처방전이기도 하다. 23년 전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먹는 행위에 관한 이 책은 '분노의 맛', '증오의 맛', '슬픔의 맛'을 이야기한다. -조선일보


헨미 요는 어느날 그 벽, 비닐 막 같은 걸 갈기갈기 찢고 싶어졌고, 그래서 떠났다. 단지 음식 맛 감각을 다시 벼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화, 상품화, 소비화에 길들이고 “반죽음 상태로 만드는 폭력”에 맞서 “인간세계의 바람다운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그리고 “인간극의 핵심”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그에게 ‘먹다’라는 주제는 그런 의미에서 깊이를 재는 도구, 일종의 탐침과 같은 것이었다. -한겨레


문장이 짧아 읽기가 쉽다. 핵심만 짚어 펼쳐놨지만, 형식이 기사와 사뭇 다르다. 기사와 문학 사이 어딘가에 놓인 글들이다. 기네스북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식당’으로 인정한 타이의 로열드래곤에 간 그가 수천 명의 사람들이 먹고 씹고 삼키는 장관을 묘사한 문장을 소개하고 싶다. “수천 개의 입과 위장 속에 채워지는 것은 사상도, 주의도, 주장도 아닌 음식뿐이다. ‘아아, 사람이란 너도나도 음식을 먹는 기관이구나.’ 감동이 밀려온다. -중앙선데이


고만고만한 인문학적 음식 이야기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먹는’이라는 단어를 근거로 이 책을 같은 부류에 넣는 것은 곤란하다. 이 책이 말하는 ‘먹는’ 인간은 살아 낸, 살아가는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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