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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래 도시가 있다” 뉴욕의 언더월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탐사록: <두더지 인간들>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5. 12. 3.

“길 아래 도시가 있다”

뉴욕의 언더월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탐사록,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
 

고대에는 강압에 의해 지하에 살아야 했습니다. 로마의 노예들은 평생 광산에서 일하다 죽었고, 중세에 타타르 족이 침략했을 때 크림 반도 사람들은 수직으로 입구가 나 있는 구덩이에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19세기는 물론 20세기까지 지하 거주지에 빈곤한 노동자들이 산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더비셔 벅스턴에서는 쥐꼬리만큼 돈을 받으며 노예 같은 취급을 받았던 석회 노동자들이 폐석 더미에 굴을 파고 살았답니다. 이런 인간 이하의 조건을 가진 지하 거주지는 산업혁명 이전의 역사 기록에만 등장할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대도시 아래의 터널과 동굴로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하 거주지는 여전히 존재하며, 심지어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중 화강암 암반 위에 수많은 공동과 굴이 벌집처럼 촘촘하게 연결되고 교차하는 개미탑 구조를 이루고 있는 뉴욕은, 지하철 노선이 총길이 1200킬로미터에 이르고 터널의 깊이가 지하 18층에 달하는 구간이 있는 등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지하 도시에 ‘두더지 인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 뉴욕 그랜드센트럴 역의 세로 단면입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떠올리게 하죠. 그랜드센트럴 역은 5만 8,000평의 공간에 55킬로미터에 이르는 선로가 지하 7층까지 펼쳐지고 북쪽, 동쪽, 서쪽으로 향하는 26개 간선철도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이곳은 불법 점유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으로, 일명 ‘콘도’와 ‘버마의 길’, ‘라이커 섬’처럼 한곳에 최대 200명이 사는 공동체가 형성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 지하 도시 상상도

 

제니퍼 토스는 1990년대 초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일하는 동안 뉴욕의 지하 세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터널 노숙자들을 취재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93년에 출간한 『두더지 인간들(The Mole People)』은 노숙자를 짐승에 비유하는 악의에 찬 소문의 근원을 밝히고, 노숙자들의 관점에서 터널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뉴욕 지하 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입니다.

취재와 집필 과정에서 토스는 극화, 암시, 과장 등 문학적 기법의 사용과 부정확한 지형 정보, 그리고 인터뷰 대상자들(노숙자들)과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점 등의 이유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계급구조에 따라 계층화된 미국의 사회적 지형과 모순을 성공적으로 드러냈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 1993년 출간된 <두더지 인간들> 원서 표지. 원서에는 저자 제니퍼 토스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지만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준 터널 노숙자인 블레이드로부터(블레이드의 오해 때문) 목숨의 위협을 느낀 저자는 곧바로 뉴욕을 떠났고, 이듬해 책을 출간하면서 자신의 거주지 등 개인 정보를 밝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토스는 지하 노숙자들의 세계를 서술하면서 터널 생활의 현실뿐 아니라 그들이 이루고 사는 공동체, 20~50여 개 공동체 간의 의사소통 네트워크, 정부 기관 및 자선 프로그램, 비영리 단체와의 대립에서 대해서도 서술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일으키는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터널에서 만난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지하 세계 노숙인들에 관한 진실에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섭니다.
『두더지 인간들』은 두더지처럼 퇴화해버린 반(半)인간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과 똑같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임을 말하는 터널 노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우리 시대 비극의 단면을 포착해낸 탐사 문학의 고전으로, 현재까지도 뉴욕의 지하 공간을 다룬 대부분의 책과 기사, 그리고 영상물이 참고로 할 만큼 터널 노숙자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저서로 꼽힙니다.

 

 

지상의 법과 가치를 전복한 지하 생활자들
두더지 인간들

(원제: The Mole People : Life in the Tunnels Beneath New York City)

제니퍼 토스 지음 | 정해영 옮김 | 황은주 해설 | 145*205 | 392쪽 | 16,000원
2015년 11월 30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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