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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새로운 시대, 생활을 실험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저자 이토 히로시 인터뷰 3회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5. 9. 1.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의 저자 이토 히로시 인터뷰 제3탄!

 

이번 회차에서는 아이돌 관련 생업, 콘크리트 블록 담 해체, 목조 학교 건물에서 올리는 웨딩업에 관한 이야기 등이 이어집니다. 아이돌은 정말 그 아이돌(!) 맞습니다 ㅎㅎ 이 친구 정말 별일을 다 벌이는군요.

 

 

 

*****

 

일본 경제지 『겐다이비즈니스(現代ビジネス)』  2012년 12월 16일
요네다 히로히코의 <새로운 시대, 생활을 실험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시리즈 대담 제3회


'인생을 도둑맞지 않는 일하기 방식'으로 해나가자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생업 만들기'

 

*****

 

 

'불을 피우는 아이돌'이

탄생하기까지

 

 

요네다: 그럼 또 다른 생업 이야기를 해볼까요. '불을 피우는 아이돌'은 어떤가요. '아이돌도 자급자족하자'는 콘셉트였죠.

 

이토: '자기 주변의 여러 요소를 어디까지 자급자족할 수 있는가'라는 시도 가운데 하나예요. '자급자족'이라고 하면 먹거리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요, 생활 속에서 먹거리 말고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다른 것들도 꽤 많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오락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돌도 자급자족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보려고 했어요.

 

요네다: 오락도 엔터테인먼트도 자급자족하자고 생각한 거로군요.

 

이토: 근데 이게 의외로 어려웠어요. 제가 재밌었으니까 그만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요네다: 그게 원자력발전소 문제에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주제가 된 거로군요(웃음).

 

이토: 네. '불을 피우는 아이돌'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2010년이니까 아직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때인데요, 어느 친환경 잡지가 도쿄전력의 광고를 연달아 게재했어요. 저는 '용서할 수 없다, 뭐가 친환경이라는 거냐' 싶어 화가 났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원전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니까 친환경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되고 있었는데요, 핵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요. 그 친환경 잡지의 광고기사에서는 저명인사가 대담을 하면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그 잡지에서 마치 도쿄전력에 쫓겨나다시피 해서 광고를 볼 수 없게 된 주요 광고주가 도쿄가스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요네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토: 그때 저는 '올전화(all 電化. 냉난방, 취사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주요 에너지를 모두 전기로 교체하는 것―옮긴이)는 옳은 방향이 아니다. 우선 가스를 응원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불을 피우는 아이돌의 최종 목표는 '도쿄가스의 광고에 나가는 것'으로 잡았어요.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까 우선은 프로판가스 판매회사인 레몬가스의 광고를 노리자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래서 연간 100만 엔 정도 되는 계약을 따낸다면 정말 좋겠다고요. 그래서 '옛날 방식으로 불을 피울 수 있는' 아이돌을 만들고 불을 피우는 의식을 라이브로 삼고, 노래도 만들어서 시디도 팔려고 했어요.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한 셈이죠.

 

요네다: 불을 피우는 아이돌은 어떻게 찾았나요?

 

이토: 첫번째 불을 피우는 아이돌은 스카우트했어요. 불을 다룰 줄 아는 여자분을 찾아서 '죄송하지만 일회성 이벤트만 하셔도 괜찮으니까 불을 피우는 아이돌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부탁을 하고 허락을 받았어요. 그리고 불을 모시는 신사에 가서 거기서 성공 기원을 드려야만 불을 피우는 아이돌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얘기하고 같이 갔는데 가장 높은 신관이 성공 기원을 해주셨어요.

 

요네다: 그 여자분은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화보에도 나오는 분이죠?

 

이토: 이벤트를 참 잘 해주셔서 사람들이랑 악수를 나누는 시간도 갖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어요. 언론에 보도자료도 냈고요. 그랬더니 두 군데 신문사에서 취재를 하러 와서 올전화 문제와 불의 문화성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가다랑어 다타키(표면을 살짝 익힌 회 요리―옮긴이)나 일부러 그을려 나뭇결을 돋보이게 만드는 목재 등 불과 관련된 특산품 판매 행사를 기획해서 지역을 활성화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기사가 되기는 어렵겠네요'라고 난색을 표해서 결국 기사화되지는 않았어요(쓴웃음).

 

요네다: 그러면 첫번째 불을 피우는 아이돌은 공식 기록에는 남지 않은 건가요?

 

이토: 신문사에서 취재를 왔다는 기록밖에 안 남았죠. 첫번째 아이돌에 이어서 '미스ㅇㅇ대학'이었다는 분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어요. 정말 좋은 분인데 학생 시절에 NPO를 했대요.

 

요네다: 비교적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하고 게다가 미인이군요.

 

이토: 그렇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인데 정말 팔이 가늘었어요. 그래도 노력해서 불을 피울 수 있게 됐어요. '옛날 방식으로 불을 피우는 검정시험' 5급까지 땄어요.

 

요네다: 그런 검정시험이 있어요?(웃음)

 

이토: 와코 대학 명예교수라는 분이 주관하는 시험이에요.

 

요네다: 5급이라면 가장 낮은 급수인가요?

 

이토: 네. 몇 초 만에 불을 피울 수 있는지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서 그걸로 급수를 결정해요. 거기서 그분이 5급을 따서 '오, 앞으로 뭔가 잘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뒤에 곧바로 모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했어요.

 

요네다: 아, 취직 준비를 하고 있었군요.

 

 

'쓸데없는 부분'을 생략한

결혼식을 프로듀스하다

 

 

이토: 네. 그 방송국에 면접을 보러 가서 불을 피운 이야기를 했더니 합격한 것 같대요.

 

요네다: 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도움이 되었군요.

 

이토: '저는 에너지 문제 등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고 불 피우기를 했고, 그러는 한편 가족의 화목에도 불은 정말 중요한 것이며...'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좋은 인상을 주었을 것 같아요. 그 방송국 홈페이지에 실린 그분 프로필에는 '특기: 불 피우기'라고 쓰여 있어요(웃음). 그러니까 기록에는 남은 셈이죠.

 

요네다: 그렇게 이상적인 '불 피우는 아이돌'이 금방 사라진 것은 아쉽네요.

 

이토: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아쉬웠죠. 하지만 본인에게는 더 잘된 일이니까요. 그리고 아이돌 매니지먼트는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게 됐어요.

 

요네다: 확실히 아이돌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토: 아키모토 야스시 씨(일본의 유명한 아이돌 AKB48의 프로듀서―옮긴이)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새삼 깨달았어요(웃음). 분명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야만 하는 일이 있는 법이에요. 대단해요. 저는 아웃도어 잡지 편집장과 이것저것 교섭을 해서 '불을 피우는 아이돌이 기사화될 수 있도록 이벤트가 있으면 부르겠다'는 데까지는 성공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를 따지 않을까 하는 야망도 있었죠.

 

요네다: 처음 목표였던 레몬가스 광고는 따내지 못했나요?

 

이토: 네, 못 땄어요. 하지만 소화용품 광고를 한 건 따냈어요.

 

요네다: 오, 성공했군요. 이토 씨는 '목조 교사 웨딩'이라는 생업도 하고 있죠?

 

이토: 이건 다들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결혼식 비용은 300만 엔쯤 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갔던 결혼식들이 어땠는지 별로 기억나지 않아요. 그 이유는 결혼식이 거의 패턴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요네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를 재현한 비디오를 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솔직히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아요.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웃음).

 

이토: 분명 축하해야 하는 경사인데도 안타깝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자면 저를 초대해준 신랑은 알지만 신부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 채 결혼식이 끝난다든가,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답례품 같은 거요. 그런 부분이 많으니까 그렇지 않은 결혼식을 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군마 현 어느 시골에 영화 촬영 장소가 되기도 한 폐교가 있어요. 마침 제 지인이 그 영화를 좋아해서 거기서 식을 올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제가 그 동네 사무소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빌려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곳을 식장으로 삼고 결혼식 운영을 하게 됐어요. 결혼식을 올리는 데 필요한 인력이라 해봤자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전체 과정을 진행할 사람, 식장 디자이너 한 사람, 사진사, 청첩장 디자이너 정도예요. 신랑신부와 잘 맞는 전문가들을 모을 수 있으면 결혼식을 할 수 있어요. 나머지는 좋은 장소를 찾고, 예산 내에서 식을 올리고, 어느 정도 비용을 받으면 그만이에요. 처음 진행한 결혼식에서는 나흘 동안 5천 엔이라는 가격으로 식장을 빌렸어요.

 

요네다: 정말 싸네요.

 

이토: 폐교니까요. 평소에는 별로 쓰이지 않는 곳이고, 청소도 저희가 하고 통풍을 시키는 것이 건물에도 좋아요. 하지만 좀 먼 곳이라서 버스 요금도 들고 시간도 걸리기는 하는데 그것도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하객을 '도쿄에서 온 손님'과 '지방에서 온 손님'으로 나누어서 모두 같이 버스로 이동하면서 사이가 좋아지게끔 오락을 준비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대개 결혼식에 가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잖아요. 혹은 나 혼자만 그 테이블에서 낯선 사람일 때도 있죠. 그러면 '신랑신부랑 어떤 사이세요?'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식이 끝나면 그냥 돌아가게 돼요. 그러면 모처럼 모인 건데 아깝잖아요. 재미있게 보낼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제가 프로듀스하는 결혼식에서 중요한 것은 신랑신부도 사전에 식장을 청소하거나 결혼식 준비에 참가한다는 거예요.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뒀다가 결혼식 당일 식장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하객들에게 틀어줘요. 그러면 하객들이 감탄해요. '오, 신랑신부가 웨딩케이크를 자르기 전에 벌써 같이 작업을 하고 있네'라면서요(웃음).

 

요네다: 그렇군요. 그게 진짜 처음으로 같이하는 작업이네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고 확대해간다

 

 

이토: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면 하객들은 '아, 이 두 사람은 앞으로 잘 살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고 돌아가요. 신랑신부도 우리와 함께 준비를 함으로써 결혼식을 운영한다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되고 진행을 하는 저한테 부당한 항의를 하지 않게 되고요.

 

요네다: 그러면 땀을 흘리며 같이 결혼식을 준비했다는 충실감도 어그러지겠죠.

 

이토: 신랑신부도 결혼식을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식이 끝나면 학교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맥이 풀린 학생 같아 보여요. 둘이서 몇 번이고 사진을 보면서 '정말 즐거웠어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요네다: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한 것들에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게 바람직한 걸까'라는 의문을 갖고서, 왜 이렇게 돈을 지불하는 것인지 조사하고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해나가는 것. 이것이 이토 씨가 실천하는 '생업 만들기'의 정신이군요. 

 

이토: 그렇게 하면 왜곡된 부분도 없어지고 자기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니까 자기 생활만큼은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시작해서 점점 범위를 넓혀가는 편이 저를 포함하여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가장 순순하게 할 수 있는 방법 같아요. 무언가 사업을 할 기회를 찾아서 돈을 투자하고 그만큼 결실을 보는 건 일종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급하게 도전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요네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서 널리 통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은 다음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생업'의 콘셉트로군요.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제가 하고 있는 이 대담 시리즈에서 만났던 pha씨(IT계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셰어하우스에서 같이 사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1978년생 프로그래머.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니트'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옮긴이)도 교토 대학 출신이에요. 완전히 교토파가 흐름을 만들고 있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토: 교토는 돈이 별로 들지 않는 곳이에요. 제가 하는 '생업'에도 거기서 받은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비싼 술집에 가는 것도 괜찮지만 돈이 없다면 술을 사가지고 가모가와 강변에 가서 마셔도 돼요. 어느 쪽이든 즐거워요. 가모가와 강변은 탁 트였다는 느낌을 주니까 돈이 없어도 사치스럽죠.

 

요네다: 교토 사람들은 강변에서 마시는 걸 두고 '밖에서 마신다'라고 하는군요.

 

이토: 폭이 넓다는 의미에서 교토에서 산 것이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돈을 들이지 않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돈을 들이면 들이는 만큼 기온(전통 가옥이 많은 교토의 거리. 음식점, 찻집, 요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옮긴이) 같은 장소에서 놀아도 돼요. 그런 것들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좋아요. 학생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세계만을 보고서 덮어놓고 그것만 목표로 삼게 되지 않으니까요.

 

요네다: 또 교토에는 애매하고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무언가를 하면서 형태를 갖추는, 요즘 비즈니스에서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사업자만의 생각으로 고객에게 필요 없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시간, 노력, 자원 등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론)‘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그러한 방법의 힌트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이토: 상식적인 방법으로 창업을 한 사람들 중에서도 때때로 제 책을 읽고 힌트를 얻었다는 분들이 있어요.

 

요네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책을 쓴다거나 매체에 나와 이야기를 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성공했다'는 식이 되기 쉽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고 방향 전환을 거듭해서 지금처럼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이토: 그런 것 같아요.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죠. 갑작스럽게 큰 사업을 해보겠다고 나서서 그런 준비를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드문 케이스라고 생각해요.

 

요네다: 그런 의미에서 회사원인 사람도 작은 일을 만드는 것부터 시도해보는 게 잘될 가능성이 있겠네요.

 

이토: 그렇죠. 과외 활동 정도의 규모로 일 년에 한 개 정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작은 일을 하나 만들면 생활이 재미있어질 거예요. 자기가 기획자의 입장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져요. 제가 하고 있는 매실 판매 생업도 그런 의식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수확에도 기획의 요소를 넣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요네다: 일을 주최하는 사람이 되는 거로군요.

 

이토: 그렇죠. 노동의 일부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최하는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모든 책임을 지면서 하는 거죠.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시작한

'콘크리트 블록 담 해체'

 

 

요네다: '해머협회'라는 걸 하고 계시죠?

 

이토: 정확하게는 '콘크리트 블록 담 해머해체협회'예요. 사람들에게 블록으로 쌓은 담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거의 대답하지 못했어요. 중장비를 가져와야 하느냐는 대답이 고작이었죠. 제가 그냥 사람 힘으로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 놀라는 사람이 많아요. 블록 담 해체는 마루 깔기와 비슷해요. 업자를 불러 철거하면 5만 엔 정도 들고 담의 규모에 따라 20만, 30만 엔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다면 직접 부수면 어떨까 싶었어요. 블록 담 부수기는 정말 재미있는 일이에요. 인간 내면에 있는 파괴 충동을 만끽하는 체험이랄까요.

 

요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보여준 사람들의 열광은 사상적인 측면에서 그런 뿐만 아니라 벽을 부수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흥분도 컸기 때문이었을 거라는 게 이토 씨의 주장이죠?

 

이토: 당시에 본 뉴스를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순간 다들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큰 흥분에 휩싸였죠. 그건 아마 사람들이 교대해가면서 점점 벽을 부수는 게 정말 즐거웠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직접 벽을 부수어보고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요네다: 냉전 구조와 관계 없이 벽을 파괴하려는 충동을 만끽하고서 기뻐했다는 거로군요(웃음).

 

이토: 토마토 던지기 축제라든가 접시 깨기 축제 등 물건을 부수는 축제는 세계 곳곳에 있어요. 파괴는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행위 중 하나죠. 이걸로 생업을 할 수 있다면 저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콘크리트 블록 담 해머해체협회'가 만들어졌어요. 물론 제대로 돈을 받고 있지만 가까운 곳이라면 돈 안 받고도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어요. 저는 교토에서 독채 임대 숙소를 하고 있는데 그곳의 담을 낮출 때 해머로 벽을 부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더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모두 같이 벽을 부쉈더니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트위터에다 '벽을 부수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라고 썼더니 놀랍게도 열 명 정도가 모였어요. 키가 150센티미터인 여자분이라도 해머로 블록 담을 부술 수 있어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거죠. 그런 자신의 잠재능력을 벽 부수기를 통해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요네다: 그건 '축제의 자급자족'이기도 하네요.

 

이토: 그렇죠. 축제라는 오락을 즐기면서도 기술을 몸에 익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게 일본인의 생활 능력이 떨어져 있으니 다시 단련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학교 같은 걸 만드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자면 지금 무너질 것 같은 위험한 블록 담이 많아요. 지자체 등에서 보조금을 주면서 위험한 블록 담을 해체하도록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생업도 언젠가는 공공사업에 진출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정말 즐겁겠죠.

 

요네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벽을 부수는 거죠(웃음).

 

이토: 학생 시절에는 늘 친구들과 공통된 화제가 있으니까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즐겁지만 5년, 10년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생활이 달라져서 공통된 화제가 사라지게 돼요.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도 블록 담을 부수는 이야기를 하면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들이 담을 부수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대화의 분위기가 좋아지죠. 이런 점이 딱히 전문적인 일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생업의 장점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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