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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책 엿보기: 철학자 김진영의 전복적 소설 읽기 1] 누이동생의 피를 빨아서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0. 7. 7.

현대문학의 문을 연 첫 문장

그 유명한 카프카의 『변신Die Verwandlung』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변신』은 모두 한 번쯤 독서를 계획하는 작품인 만큼 이미 읽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세계문학사에서 현대문학을 여는 노크 소리로 여기는 첫 문장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문장이죠.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스런 벌레로 변해 버린 것을 발견했다.” 
『댈러웨이 부인』이나 프루스트 소설의 첫 문장도 이것과 같은 구실을 하는데 『변신』이 가장 충격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벌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출처: 위키피디아

카프카의 문학, 낯선 언어의 효과


카프카는 체코 사람인데 독일어, 정확히 말하면 체코 독일어라는 특별한 언어를 썼어요. 체코 유대인이 출세하려면 독일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가 독일어를 습득하면서 체코 유대인이 쓰는 특별한 독일어, 우리가 콩글리시라고 하는 것과 같은 언어를 썼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소외된 독일어를 썼기 때문에 정통 독일어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어떤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어의 특별함, 낯섦이 있잖아요. 카프카 문학의 혼란스러운 낯섦과 접촉당한 듯한 느낌은 대체로 언어 행위에서 온다고 볼 수 있고, 이에 대해 사람들이 전형적인 카프카 문학이라고 합니다.

 

소외인가, 탈출인가?


카프카는 문학에서 늘 승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승리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변신은 이기는 이야기일까요, 지는 이야기일까요? 갑충으로 변한 뒤에 일어나는 사건은 그 전의 것들이 다 무효화되는 과정, 상실되는 과정입니다. 이 상실 과정의 끝에서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그레고르가 상처 입고 죽게 되죠.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던졌다는 사실입니다. 사과가 박힌 부위가 곪으면서 썩어 가고, 또 먹지를 못해 차츰 소멸되다가 죽습니다.
변신을 비극으로 읽는다는 점은 통상적으로 합의됐습니다. 갑충으로 변했다는 것을 소외 현상으로 읽는다는 뜻이죠. 주인공이 부정적인 상태로 떨어진 상황에만 주목하는 겁니다. 거꾸로는 안 될까요? 오히려 갑충의 영역에서 다른 데로 빠져 나가는 탈출의 의미로 읽어 낼 수는 없나요? 성공하는 탈출 말입니다

 

삶의 두 축, 아버지와 여자


카프카의 삶은 두 축이 대표합니다. 하나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여자죠. 아버지와 여자는 삶을 대변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 문학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카프카의 무의식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을까, 헤겔식으로 이야기하면 인정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목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글쓰기는 아버지의 바람과 완전히 동떨어진 길이었어요. 아버지는 결코 문학을 인정하지 않는 존재였죠. 아버지는 언제나 도달할 수 없고 이길 수 없으며 그럼에도 나를 지배하는 존재로 그의 문학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내가 산다는 것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돼 버립니다.
여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죠. 카프카가 약혼녀 펠리체나 다른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박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편지를 쓰고 또 쓰죠. 결혼하자고 했다가 파혼하고, 잘못했다면서 다시 시작해요. 카프카는 편지가 아니라 박쥐를 날려 보낸 겁니다. 고립된 방의 책상에 앉아서 박쥐를 보냅니다. 박쥐가 여자에게 가서 피를 빨겠죠. 그래서 맨날 편지를 받았냐고 묻고, 답장을 기다리고 재촉합니다. 답장이란, 박쥐를 돌려보내는 거죠. 박쥐가 가져온 피는 잉크가 됩니다. 그리고 카프카는 그 잉크로 글을 써요.


아버지와 아들의 권력투쟁


삶으로부터 해방되면서 그 영양분은 섭취해야 한다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삶을 주지하면서 문학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아버지를 쓰러뜨려야 합니다. 문학을 하려면 기필코 이겨야 합니다. 또 문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여자를 이용하면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합니다. 이것이 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변신에서 아버지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권력을 찬탈당했습니다. 아들은 돈을 벌면서 가정을 꾸려 갈 고민을 했죠. 아들이 가장이에요. 아들이 가장일 때 아버지는 잠옷쟁이일 뿐이었어요. 이런 아버지가 나중에 사과로 왜 공격하나요? 그동안 가장 자리를 빼앗기고 아들이 주는 음식만 받아먹으면서 잠옷만 입고 생활하던 아버지 속에 있던 권력 탈환과 가정 재점거를 향한 의지가 사과에 실려 아들에게 치명타를 입힌 겁니다.

 

누이동생이 누구인가? 


변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누이동생이 누구인가를 들 수 있습니다. 바로 눈에 띄기로는 유일하게 오빠를 인정해 주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갖다 주고 살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오빠를 미워하는 존재가 됩니다. 나중에는 저건 오빠도 아니에요.”라고 하며 그레고르의 이름을 박탈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저것 때문에 우리 집이 엉망이 됐으니 없어져야 한다고 하죠. 그러고 나서 진짜 그레고르 잠자가 없어집니다.
누이동생이 어떤 존재일까요? 나중에 완전한 승리의 증표가 되는 풍요롭고 아름답고 생기로 가득 찬 신체, 아침 햇살 속 전차에서 기지개를 켜는 누이동생의 신체는 뭘까요?

 

아버지를 이기기 위한 전략

 

“그 애는 분명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면 어깨까지 올라가 그 애의 목에 키스를 해 줘야지……. 누이동생은 직장에 나가면서부터 리본도 칼라도 없이 목을 드러내고 다녔다.” 
—<변신.시골의사> 71쪽(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죽기 전 갑충이 슬그머니 누이동생을 타고 올라가 그 치명적인 목에 입을 맞춥니다, 말이 좋아 입맞춤이지, 이를 박고 흡혈하려는 겁니다.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죠. 이런 논리로 이해해봅시다. 그레고르가 누이동생을 물었어요. 물린 누이동생이 그레고르가 된 겁니다. 당연히 그레고르는 없어져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누이동생은 소풍을 갑니다. 누이동생이 누구입니까? 아버지와 벌인 싸움에서 누가 승리했나요? 아버지는 이 승리의 비밀을 알 수 있을까요?

 

카프카 문학의 코드, 흡혈


최근에는 뱀파이어가 친근해져서 얼굴이 하얗고 잘생긴 멋있는 남자로 많이 등장하죠. 사실 제가 볼 때 뱀파이어는 극렬한 삶의 억압 속에서 기필코 그것을 뚫고 나가는 삶의 의지를 표현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남의 피를 빨아서라도 사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카프카의 가장 중요한 코드는 들뢰즈Gilles Deleuze가 언급한 부분과 만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리즘, 흡혈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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