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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책 엿보기-글쓰기의 최전선]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낭독 파일 1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5. 5. 26.

 

<글쓰기의 최전선> 낭독 파일 1(낭독-김미영)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일부


길도 자아도 열어두면 위험할 것 같지만,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름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 김우창 -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하고 바쁘다며 ‘집필 유예’의 근거를 댄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 잔 꼭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날이 새는 것도 모르고 게임을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고 그쪽으로만 생각이 쏠리고 영감이 솟고 일이 되게 하는 쪽으로 에너지가 흐르는 것. 그게 무엇에 빠진 이들의 일반적인 증상이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년간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
스피노자는 “진리탐구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지 않으며, 두 번째 방법의 탐구를 위해 세 번째 방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인식에도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금속 연마를 예로 든다. 금속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모루가 필요하고 모루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도구들이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제2, 제3의 도구를 찾으며 무능력을 증명하는 일의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일단 내 앞에 있는 조잡한 도구로 시작하라. 망치로 삽을 만들면 삽으로 사과나무를 심고 사과 열매를 팔면 책을 살 수 있다. 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쓸 것. 써야 쓴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문장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문단을 만들고 그 문단의 힘으로 한 페이지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서 영감을 기다리고 지적 자극을 위해 벤야민을 읽고 벤야민을 읽다 보면 마르크스가 궁금하고 마르크스를 공부하려면 『자본론』을 펴야 하고……. 무능력에서 출발하면 글은 영원히 쓸 수 없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느껴져도 자기 능력에서 출발하기. 일단 써봐야 어디까지 표현이 가능한지, 어디가 약한지, 어디가 좋은지 볼 수 있다. 글쓰기 초기 과정은 ‘질’보다 ‘양’이다. 일본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 사이토 다카시는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이라는 책에서 “질보다는 양”이 문장력 향상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원고지 열 장을 쓰는 생활습관을 기르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좋은 글을 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백지 공포는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말하려는 내용을 완벽하게 써내야 한다는 부담을 버리고 글을 써내려가면 그 과정에서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쓴 글이 곧 나다. 부족해(보여)도 지금 자기 모습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패하면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에서 나는 글쓰기가 좋다. 쓰면서 실망하고 그래도 다시 쓰는 그 부단한 과정은 사는 것과 꼭 닮았다. 김수영의 시 「애정지둔(愛情遲鈍)」에 나오는 대로 “생활무한(生活無限)”이고 글쓰기도 무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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