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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엿보기

[책 엿보기-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합니다-역자 후기] 살아가는 데 무기가 되는 언어 능력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20. 6. 26.

<당신의 자리에서 생각합니다>를 번역한 지비원 씨가 쓴 <옮긴이의 말>을 공개합니다. 


오래전 7차 교육 과정의 『국어생활』이라는 교과서 편집을 맡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말하기와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개선하게 해 주는 책’은 오랜 꿈과 같은 존재였다. 알다시피 교과서란 읽기 싫어도 읽어야 하고, 읽으면 외워야 하고, 외운 다음에는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잘 비판할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문제 풀이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다 보면 도리어 ‘국어’니 ‘문학’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책에 가깝다. 그 전의 교육 과정과 아무리 차별화되는 교과서라고는 하나 내가 만든 책도 결국 ‘위의 지침’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돌이켜보면 ‘국어’와 ‘생활’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교과서 업계 밖에서 그런 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필자 선정에서부터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필자들에게 “당신의 아드님이나 따님에게 이야기하듯이 써주세요”라는 부탁을 많이 했는데 다들 머리로는 이게 무슨 말인 줄 알고 계셨다. 하지만 늘 써 버릇하던 문체와 지식수준을 백지로 돌리고, 독자(청소년)의 자리에 선다는 게 어떤 경험인지 생각도 해 보지 않은 분들이 많았으며 그렇기에 그 작업에 부닥치자마자 포기하는 분들도 있었다. 자신만의 글을 쓰기 위해 적어도 십수 년간을 공부에 바치고 일가를 이룬 이후에는 저서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잡지에 어떤 글을 쓰든 늘 읽어 줄 독자가 있었던 그분들에게 내가 얼마나 무리한 요구를 했는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글이란, 책이란 것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다. 이미 그 길을 가본 사람만이 뒷사람을 위해 표지판을 그려줄 수 있다. 글쓰기에 관한 책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누구나 표지판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 이게 정말 그토록 어렵고 힘겨운 일인가 하는 의문은 그 뒤 내가 번역을 하게 된 이후에도 가슴 한구석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기에 2017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대열에 든 이 책의 첫머리를 읽는 순간 내가 오랜 시간 해왔던 생각과 같은 방향에서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상대방의 자리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고 시작한다. 똑같은 주제로 글을 쓰더라도 독자가 조금이라도 더 쉽고 명확하게 읽기를 바라며 쓴 글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에만 몰두한 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전자의 마음에서 비롯한 말하기와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이 어떻게 언어생활을 바꿀 수 있는가를 말하며 그 변화를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예문과 문제를 통해 차근차근 생각하게 만든다. “당신이 왜 막막해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우선 상대방의 자리에서 생각해 봅시다. ‘나’는 ‘상대’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을 쓰기 전에, 무언가를 설명하기 전에 ‘상대’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이런 태도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것이었기에 언뜻 지루하고 힘들어 보일 수 있는 ‘말하기’와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이 책만 읽으면 말하기와 글쓰기의 달인이 된다고 이야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는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과정이다. 실제로 이 책은 「들어가며」에서부터 ‘내 언어생활의 어느 부분이 문제인가’를 맞닥뜨리게 만든다. 여러분도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들이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이 정도면 고등학생들에게 잘 설명한 것 같은데? 어떤 접속 표현이 문제인지 도저히 못 찾겠는데? 분명 이 글은 이상해. 그런데 어디가 이상하지? 왜 딱 부러지게 설명을 못하는 걸까?’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 처해 보라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니 그런 당혹감과 마주할수록 한 걸음씩 잘 나아가고 있다고 격려해 주고 싶다. 
또한 대담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말의 힘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그런 경험이 하나둘 쌓일수록 이 책에서 말하는 ‘긍정적인 나선형 구조’는 더 큰 원을 그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미처 몰랐던 내 말과 글이 어느 순간 크게 변화했음을 실감할 것이다. 모든 기술에는 단련하는 과정이 있는 법이고 이제나저제나 조바심내지 않더라도 꾸준히 그 과정을 계속해 나가면 변화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이는 말과 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말과 글에 둘러싸여 산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쓰면서 뉴스를 읽지 않거나 인터넷에 간단한 문장을 끼적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쉽사리 말하고 글을 쓰는 환경이 더 나은 말하기와 글쓰기에 도움이 되기보다 말과 글에 쉽게 염증을 느끼게 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의사를 더욱 잘 전달할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모니터와 휴대전화 액정 너머에 분명히 존재하는 ‘상대’를 더욱 의식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러한 의문에서 출발할 뿐만 아니라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여러 가지 열쇠와 무기를 품고 있다. 부디 이것들을 순조롭게 손에 넣고 더 큰 ‘언어생활’의 바다로 자신 있게 나아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지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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