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추천도서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 이 책의 독자인 ‘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일까?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6. 8. 30.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공간 환대의 철학자 박정민 선생님이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을 읽고 서평을 써주셨습니다.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참고가 되었으면 해서 올립니다.


​-----------------------------------------------------------------------------------------------------


올바르게 존재할 수 있는 자유
-박정민 (연구공간 환대)


<나를 위한 현대철학 사용법>(다카다 아키노리, 메멘토, 2016)에서 ‘나’란 어떤 사람일까? 책을 펼치면 이런 말이 나온다.

“어쩌면 당신은 서점에서 ‘올바른 자살’과 ‘올바르지 않은 자살’이라고 쓰여 있는 소제목을 보고 충동구매를 했고, 지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 책을 손에 들었을지도 모릅니다”(5쪽).

자살이라고? 한글 번역서는 이 주제를 굳이 전면에 부각시키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출간된 원서는 띠지에 아예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자살에는 ‘올바른 자살’과 ‘올바르지 않은 자살’이 있다--‘나’의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한다”(自殺には、「正しい自殺」と「正しくない自殺」がある――「私」の問題を徹底的に考える). 그렇다면 이 책의 독자인 ‘나’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자살’에 한정되지 않는, 훨씬 보편적인 것이다. 일단, 자살을 하는 것은 괴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괴로운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괴로운 것은 속박을 당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유에 손상을 입었을 때나 억압과 속박을 느낄 때 괴로워합니다”(29쪽). 그러니까 자살 이야기로 좀 독특하게 시작하고 있는 이 책을 실제로 관통하고 있는 것은 ‘자유와 속박’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다.

그런데 자유라는 말은 너무 넓은 말이다.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어떤 자유일까? 저자의 출발점은 ‘올바름’이다. “인간은 올바르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내 생각이 적어도 내게는 옳기 때문에 사람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22쪽). 여기 “적어도 내게는”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저자가 말하는 올바름이란 어떤 ‘객관적인 정의’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정당화”되는 “논리의 정합성”을 뜻한다(194-5쪽). 그러니까 이 책에서 논하는 자유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바를 일관되게 행하며 살 수 있는 자유’이다.


이렇게 보자면,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억압을 겪게 되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의 독자인 ‘나’가 될 수 있다. 채식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직장인, 입시 준비보다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이 올바른 공부라고 믿는 고등학생,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해고를 이행하라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고 망설이는 중간관리자, 자신이 속한 단체의 운영방식이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아서 갈등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의 독자인 ‘나’가 될 수 있다.


이 출발점은 책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 자연스레 방향을 잡아준다. 문제가 되는 괴로움이나 속박이 마음의 주관적 상태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지 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 하지만 ‘자유 또는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내가 올바르다고 믿는 바를 나는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 행동은 내 안에서가 아니라 타자와 맺는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믿는 직장인 김씨는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올바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자유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회식자리는 타자와 함께 만드는 자리이며, 그 자리는 그에게 자유롭지 못한, 불편한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자유/올바름의 문제가 “자신이 있을 자리”(164쪽)의 문제라고 본다. ‘자유 또는 올바름에 대한 추구’는 결국 “타자의 집합인 사회에 존재하는 제도 안에서 우리가 있을 자리를 확보하기”(180쪽)를 과제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자리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올바르게 존재하기 위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싸움”(191쪽)으로 나서게 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세계를 회피하거나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능동적으로 “세계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237쪽). 대략 이것이 ‘자유로운 삶’에 관해 저자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저자는 현대철학의 이론들을 가져와서 이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하나하나 채워간다. 이를테면 우리가 어떤 속박 아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니체의 도덕계보론이나 하이데거의 세계론을 끌어온다든지,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이론과 레비나스의 타자론을 조합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현대철학을 그 자체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는 현대철학의 다양한 이론들이 콜라보를 이루어 사용되는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런 성격을 염두에 두고 읽는 것이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다. 서로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철학 이론들을 모아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는 추상적인 철학 이론들에 좀 더 구체적인 맥락을 부여함으로써 독자들의 철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 이것이 저자의 구상이다. 자기 자신이 이 책의 독자인 ‘나’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세부적인 그림들이 ‘사용할 만한’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판가름해볼 수 있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