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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편집 후기

편집자로서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저자, 전호근

by 나와 우리의 삶에 기여하는 지식교양 2015. 12. 11.

# <한국 철학사>를 출간하기까지

 

 “강좌를 열면 들으러 오는 시민이 거의 없어서 폐강되기 일쑤”였던

‘한국 철학’이라는 주제로 1년 강좌를 기획한 도서관과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저자, 전호근

 

『고문진보』를 처음으로 전호근 선생님의 강의를 듣기 시작한 건 200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무렵부터다. 파주에서 직장생활을 했기에 평일에 강의를 듣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다가 백수가 되자마자 일산과 서울을 오가며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논어』 『맹자』를 연이어 수강하다가 다시 직장생활의 늪으로 빠지면서 한동안 공백이 있었고 2011년부터 박지원, 『논어』 강의를 들으면서 선생님께 편집자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전호근 선생님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은 안다. 그의 폭넓은 문헌 장악력과 고전에 대한 정밀한 해석, 그리고 20년간의 시민강좌 경험으로 다져진 소통력이 강의실에 어떤 긴장과 지적 흥분을 전해주는지를. 강의뿐 아니다. 당시 선생님이 집필한 교양서는 없었지만 간간이 찾아 읽은 글 또한 빼어났다. 편집자로서 이런 저자의 책을 욕심내지 않을 수는 없다. 한데 원고를 받으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나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직접 강의를 듣고 녹취를 하는 수밖에.
『한국 철학사』는 2012년 동대문정보화도서관에서 40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전호근의 한국 철학사 강의”를 토대로 집필된 저서다. “강좌를 열면 들으러 오는 시민이 거의 없어서 폐강되기 일쑤”였던 ‘한국 철학’이라는 주제로 1년 강좌를 기획한 도서관도 과감했지만, 그 기획을 덥석 받은 저자 또한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도서관 시설이 말썽이 나서 강의실을 옮긴 적도 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앓기도 했지만 저자는 1년으로 기획된 강의를 끝까지 진행하셨고, 나는 마지막까지 수강생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신화 시대의 강의를 제외하고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총 35회분의 강의를 녹취했고, 저자는 지난 1년간 강의록의 3분의 2를 수정, 가필하여 총 3,600매의 원고를 탈고하셨다.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 철학사에는 유학은 물론이고 불교부터 도교, 동학, 마르크시즘, 기독교 사상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 광범위한 사유의 틀 안에서 35명이라는 지적 거인들을 선별하고, 그들의 철학을 일관된 입장으로 해석해내는 일은 보통의 학문 수준으로는 어림없을 뿐더러 어떤 종류의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저자의 이 사명감은 다음 글에서 보여주듯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실천적 지향을 잃지 않으려 하는 철학자로서의 자의식에서 비롯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철학이 삶에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말이 道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다시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말을 풀이하면 ‘道는 철학이고 사람은 삶’이다. 그렇다면 삶이 철학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 삶에 봉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철학이 늘 이 긴장을 유지해 왔다고 파악했다. 이 책을 기술하면서 시종일관 구어체, 그것도 높임말을 쓴 까닭은 강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삶에 봉사하는 철학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이다.”(전호근, 『교수신문』 인터뷰에서)

 

# 2015년 여름, 경희대 연구실에서(촬영 한승일).

 


나는 무엇보다 ‘삶에 복무하는 철학’이라는 말이 단지 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호근이라는 단단한 철학자가 『한국 철학사』라는 묵직한 책 한 권에 녹여 내었다고 생각한다.

-<출판저널> 11월호, 박숙희(메멘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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