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멘토의 2022년 7월 신간을 소개합니다.
정상은 없다― 문화는 어떻게 비정상의 낙인을 만들어내는가
(원제: Nobody’s Normal ― How Culture Created the Stigma of Mental Illness)
★서울대 김승섭 교수 추천★
★『뉴욕타임스』 편집자의 선택★
“반세기 만에 나온, 낙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작업”
—샌더 L. 길먼(에모리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생생한 사례들로 가득 찬 명징한 설명.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정의할 권력을 되찾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김승섭(『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1. 정신 질환의 낙인을 만들고 지탱하고 변화시키는 역사적, 문화적 힘들에 대한 깊이 있고 매혹적인 탐구
정신보건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가 정상성이라는 허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를 추적한 책. 낙인은 세상 어디에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진다. 이 책은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의 ‘역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역사적 양상(자본주의, 전쟁, 정신 질환의 의료화)을 연대순으로 살펴본다. 우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 없다는 것은 질병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산업혁명 시기의 경제적 요구, 단성 사회에서 양성 사회로의 이행, 인종주의, 식민주의 득세 과정에서 여성, 동성애자, 흑인의 몸이 어떻게 특정 정신 상태(정신이상)와 연결되었는지 탐색한다. 두 번째, 정신적 문제에 대한 낙인과 수치심을 군대와 민간 사회 모두에서 줄인 ‘전쟁’의 역할을 조명한다. 전시에는 정신의학적 장애가 전투 중이든 아니든 받아들일 만한 스트레스 반응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정신 질환의 점진적 의료화 문제를 다룬다. 의료화란 특정한 체질량에 이르는 것이 ‘비만’이 되는 것처럼 비의료적인 문제를 포함한 일상생활의 측면을 마치 의료적인 것처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책은 의료화가 질병과 낙인의 사회적 기원을 간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1600년대 초, 미국 마서스비니어드섬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그곳에서 250년 동안 근친혼으로 사회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폐쇄된 유전자 풀에서 유전적 장애가 등장했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 부분적 청각장애인과 청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수어를 고안했고, 청각장애가 그저 인간들 간의 다름 중 하나일 뿐이라고 여겼다. 시간이 흘러 새 주민이 정착하면서 청각장애는 사라졌지만 많은 청인이 습관적으로 다른 청인과 수어를 계속 썼다. 마서스비니어드섬은 어떻게 자연이 아닌 문화가 정상과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것을 만들고 정의하는지를 보여 주는 최고의 예다.(40~43쪽)
2. 4대에 걸친 그린커 가문의 연구와 정신의학사를 종횡으로 엮은 역사서
줄리어스 그린커는 성차별적이었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은 19세기의 신경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다. 그의 관점이 그리 과격한 편도 아니었다. 당시 의사들은 여성의 생식기관이 정신이상을 일으킨다고 믿었고, 1800년대 말 시카고에는 ‘어떤 형태로든 기형인’ 사람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범죄자로 분류하는 ‘어글리 법’(1973년에 폐지됨)이 있을 정도였다. 줄리어스와 달리 그의 아들 로이 리처드 그린커 1세는 정신 질환과 관련된 수치심과 낙인을 줄이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 역시 신경학자로 1933년 프로이트에게 열다섯 차례에 걸쳐 정신분석을 받은 후 1935년 시카고대학에 정신의학과를 설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고, 제자와 「북아프리카에서 전쟁 신경증」(1943)이라는 기밀문서를 작성했는데, 이 문서는 전후에 『스트레스 받는 남자들』(Men Under Stress)로 출판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정신분석적 개념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도 1970년대 중반, 조현병을 스펙트럼 장애로 보는 관점에 격렬히 반대했다.(2013년 나온 『정신 질환의 통계 및 편람DSM』 제5판은 조현병을 스펙트럼 장애로 재구성한다.) 반면, 의료인류학자인 그의 손자 로이 리처드 그린커 3세(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정신 질환이 결국 하나의 스펙트럼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심리상 차이를 보여 주는 특징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는 그린커 가족 4대의 일과 삶이 정신의학의 역사와 함께 녹아 있다. ‘그린커들’은 각자 자기가 속한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19세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며 정신의학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훌륭하게 실증해 준다.
3. 군진정신의학의 성과를 재조명하다
저자는 정신의학 역사서 대부분이 군진정신의학(military psychiatry)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그것이 정신의학사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재조명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신 질환에 대한 분류와 설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이 만들었다. 군대가 만든 정신 질환의 분류 체계는 정신 질환 진단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초판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한 세대의 정신과 의사가 양산되었고, 정신역학이 진정한 전문 분야로 등장했고 미국 심리학이 탄생했다. 한국전쟁 때는 심리치료의 핵심인 대화 요법이 일상화되었다.
남북전쟁의 향수병, 제1차 세계대전의 탄환 충격,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신경증과 뇌진탕 후 증후군, 베트남전쟁의 베트남 후 증후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걸프전의 걸프전 증후군처럼 모든 전쟁에는 고유한 증후군이 있다. 고통의 표현 방식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랐던 것이다. 전쟁 증후군은 정신 질환의 낙인으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가령 탄환 충격은 마비와 관절 이상, 실어증, 감각 상실, 피로감, 불면증, 현기증 등 당시 히스테리와 같은 증상이었다. 병사들은 여성형 질환인 ‘히스테리’를 ‘탄환 충격’이라는 용어로 대신해 나약하다는 인상에서 벗어나고 정신병 환자라는 낙인을 피했다. PTSD는 현역군인, 참전 군인, 성폭력 피해자를 포함한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진단명으로 인기를 끈다. PTSD가 개인사적, 문화적 차이를 희미하게 만들고 개인의 고유한 성격과 전력보다 환경적 스트레스 원인을 탓함으로써 비교적 낙인이 덜한 진단을 제공하는 평형 장치기 때문이다.
4. ‘망가진 뇌’ 모델, 생물학적 모델은 정신 질환의 낙인을 어떻게 강화하는가
많은 정신보건 지도자들은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것을 뇌의 장애로 이해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닌 뇌를 치료함으로써 낙인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984년에 정신과 의사 낸시 앤드리어슨이 낙인을 줄이기 위해 정신 질환을 ‘망가진 뇌’라고 표현했다.(324쪽) 그린커는 망가진 뇌 모델은 현대판 골상학(두개골과 코 턱 귀의 전체적 구조를 측정해 정신 질환과 인격 및 범죄 행동 성향을 설명하고 예측하려 한 유사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신 질환을 뇌의 질환이라고 보면, 왜 뇌에 직접 작용하는 치료법인 전기경련요법(ECT)에 대한 낙인은 없어지지 않는지 반문한다. ECT는 중증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지만 뇌엽 절제술과 관련된 끔찍한 낙인이 따라붙어 모든 치료법 중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치료법이 되었다.
많은 과학자가 여전히 정신 질환이 언젠가 당뇨병이나 심장병만큼이나 ‘실재’ 의학적 상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이는 문제가 있다. 정신 질환은 치료하기 힘들고 여전히 행동에 근거해 임상적으로 진단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유전적 특징은 정신 질환 원인의 일면일 뿐이다. 임박한 정신 질환을 예측할 수 있는 검사는 없으며, 다른 장기와 달리 인간의 뇌는 연구를 위해 쉽게 해부할 수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사람을 그의 뇌로 환원하는 것은 누군가를 그 사람의 유전자나 인종 종교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환원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점이다.(13장 ‘여느 질환과 마찬가지라고?’ 참조)
생물학적 모델이 낙인을 강화하는 예로, 저자가 한국에서 진행한 대규모 자폐증 역학 연구(2006~2011)가 참고가 된다. 당시만 해도 한국 부모들은 종종 자폐증 진단을 거부하고 유전적 부담이 적은 ‘반응성 애착장애’(RAD)라는 진단을 받으려고 했다. 자녀의 장애를 차라리 어머니의 양육 탓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한국 부모들은 자폐증이 유전 때문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유전적 장애를 가족의 유전적 무결함과 혈통에 대한 먹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46~349쪽)
5.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대한 비교문화적 접근으로 낙인을 없애기 위한 역사문화적 노력과 성과를 밝히다
걸출한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로 8단계 아동 발달 이론을 창시한 에릭 에릭슨과 조앤 부부는 1944년 다운증후군 아이 닐이 태어나자마자 시설에 보내면서 사산되었다고 거짓말했다. 스물한 살로 닐이 죽을 때까지 그들은 냉담했다. 명성에 누가 될까 두려웠던 이유도 있지만, “그 시절 다운증후군 아동의 부모들 사이에 만연한 반응인 침묵, 수치심, 깊은 슬픔”을 따랐던 것이다.(296~299쪽) 정신 질환과 장애에 씌워진 오명과 낙인은 진단과 치료, 관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다. 우리가 어떻게 낙인에 성공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지를 서술하는 이 책은 낙인을 해체할 가능성도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정신 질환의 낙인을 감소시키고 정신의학이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준 항정신병 의약품 개발과 탈시설화, 신경다양성운동 등의 노력 외에도 낙인에 저항하는 좋은 예를 비교문화적 접근으로 제시한다. 일본에서는 항정신병약이 탈시설화나 지역사회 정신보건 시스템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조현병(한국에서 정신분열병을 대신하는 용어)에는 심각한 낙인이 있는데, 진단 언어를 변화시켜 낙인에 대항했다. 2002년부터 정신분열병 대신 ‘통합실조증’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이는 질환의 가시성과 치료를 촉진했다.(317~319쪽) 지역사회의 토속신앙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10년간(1996~2006) 이어진 내전으로 네팔에는 정신의학적 전쟁 피해자가 많지만 전생에 지은 업보로 믿는 경향이 있어 치료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네팔에서는 정신병이라는 말을 들으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뇌’와 관련된 ‘정신’(디마그)이 아니라 ‘가슴’과 관련된 ‘마음’(만) 문제로 접근해야 환자들이 치료받을 가능성이 크다. 디마그는 프로이트의 에고와 슈퍼에고를 합친 것, 만은 이드와 비슷한 개념이다. 디마그가 망가진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살 수 없기에 그에 관한 낙인이 훨씬 강력하다.(411~434쪽)
“오늘날 ‘비정상’은 낙인이다. 그 낙인은 한 인간이 가진 구체적 역사와 다채로운 관계를 지우고 사회가 정한 폭력적인 기준에 따라 존재를 정의한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는 『정상은 없다』에서 정신 질환이 열등하고 위험한 존재를 뜻하는 낙인이 된 역사적 과정을 면밀하게 탐구한다. 생산성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몸을 가진 사람들이 시민의 범주에서 배제되었는지, 과학의 권위를 등에 업은 현대 의학에 의해서 어떤 정신 질환이 수치스러운 경험으로 재탄생했는지 추적한다. 생생한 사례들로 가득 찬 명징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 질환에 새겨진 낙인이 역사적 구성물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것을 해체하는 일 역시 결국 인간의 몫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를 정의할 권력을 되찾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김승섭(『아픔이 길이 되려면』 저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반세기 만에 나온, 낙인에 관한 가장 중요한 작업.” ― 샌더 L. 길먼(에모리대학 정신의학과 교수)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때에 나온 획기적인 책. 심리학이나 인류학, 장애의 사회적 모델, 또는 인간의 복잡한 본성에 관심 있는 모든 이가 꼭 읽어야 할 책.” ― 스티브 실버먼(『뉴로트라이브』의 저자, 새뮤얼존슨 논픽션상 수상)
“정신의학의 역사를 다룬 비범한 책. 정상성이라는 유해한 허구에서 비켜난 사람들에게 문화가 어떻게 낙인을 찍어 왔는지에 대해 폭로한다. 로이 리처드 그린커는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낙인을 드러내며 낙인에 저항하는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이먼 배런 코언 교수(케임브리지대학 자폐증연구소 소장)
“미국과 영국 나미비아 한국 네팔을 망라한 생생한 예시, 전시(戰時)의 정신 질환과 저자의 조부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받은 정신분석 이야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자폐증 이야기를 함께 엮은 매혹적인 책.” —그레이엄 소니크로프트 경(킹스칼리지런던 지역사회 정신의학 교수)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자가 느끼는 누적된 굴욕감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흥미로운 책. 환자가 질환 자체의 부담만 견디면 되도록 할 방법을 보여 주는 훌륭한 길잡이.” ― 앤드루 솔로몬(『한낮의 우울』 저자)
“흔하고 고통스럽지만 대체로 치료할 수 있고 인간 조건과 긴밀하게 연결된 정신 질환에 대한 유익한 정보와 생각이 담긴 사려 깊은 책.” ― 케이 레드필드 제이미슨(존스홉킨스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 질환이라는 주제에 이끌리는 모든 사람을 매혹할 책.” ― 『퍼블리셔스 위클리』
“4대에 걸친 그린커 가문의 연구에서 나온 통찰들로 엮어낸 풍부한 역사서.” ―『뉴욕타임스 북 리뷰』
“읽기 쉽고 사려 깊고, 게다가 시종일관 정중하다.” ― 『커커스 리뷰』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질병의 언어로 설명하고 사유할 때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때 우리는 질병과 낙인의 사회적 기원을 시야에서 놓칠 수 있다.” -29쪽
“1892년에 심리학자들이 성적인 기호를 기준으로 정의된 새로운 종류의 근대적 개인(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비정상’)을 창조할 때까지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이성애도 동성애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21세기 초에야 비로소 의사들이 동성애를 그냥 일탈이 아닌 정신병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동성애’는 워낙 새로운 단어라서 『옥스퍼드영어사전』 1976년판에야 등록되었다.” -93쪽
“조현병은 쓰임새 많은 도구가 되었다. 우생학자는 이것을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의 성생활, 결혼과 출산 규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고, 생물학자는 유색인종을 ‘원시적’이라고 비하하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려고 이용했으며, 정치인은 인종주의와 식민주의 및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용했다.” -115쪽
“과학자들이 미국 사회에 정신 질환이 얼마나 흔한지를 처음 알고, 전투 시 스트레스가 정신적 문제를 초래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과 더 많은 의사가 정신과 의사로 훈련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정신 질환을 정신병원을 비롯한 시설 밖에서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가 제2차 세계대전이다.” -175쪽
“모두가 ‘정상’이 되기를 원하는 순응의 시대에 정신 질환이라고 진단받는 것은 치욕의 원천이 되었다. (...) 그래서 심각한 정신질환이 있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치료를 원하는 경우, 주로 정신분석가나 일반의를 찾았으며 정신과 전문의를 피하고 정신병원에 거의 가지 않았다. 의사들은 ‘피로’와 ‘탈진’ 같은,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 전용 애매모호한 진단을 내렸다. 가난하면 미친 것이고 부유하면 괴짜라는 옛말처럼, 그것은 특권층을 위한 완곡한 표현이었다.” -216쪽
“비교문화적 사례는 PTSD가 어느 정도 특권적인 진단임을 암시한다. 환자나 의사가 증상을 외상성 사건의 결과로 설명할 때, 그들은 그 사건을 특이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생 차별받은 사람들이나 몇 년 동안 감금된 채 산 사람들은 어떤가? 이 경우 불연속적인 외상성 사건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 (...) 트라우마가 큰 고통을 일으키긴 해도 꼭 ‘PTSD’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PTSD는 우리가 만든 것이며 다른 곳에서는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수용가능하고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 방식으로 특정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PTSD를 만들어 냈다. 우리의 체면을 살리는 진단인 PTSD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받고 싶어 할 수 있는 유일한 진단으로 꼽을 수 있다.” -263쪽
“의료화는 사람들이 출산을 산부인과에 입원해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거나 폐경기에 약을 먹는 것처럼, 예전에는 비의료적이던 문제를 의료적인 문제로 바꾸는 과정이다. 망가진 뇌 모델처럼 정신보건 분야에서 정신보다 육체에 특권을 부여하는 의료화는 우리 자신의 문화를 포함한 많은 문화에서 성격, 믿음, 도덕이 우리의 뼈가 아닌 정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325쪽
“사실 신경과학 문헌들은 트라우마, 만성통증, 영양실조, 교육과 심지어 명상에 이르기까지 경험 자체가 뇌에서 관찰 가능한 변화를 만든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뇌의 구조가 그토록 유연하고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정신 질환이 뇌의 질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까?” -329쪽
“2006~2011년에 한국에서 대규모 역학 연구를 진행하며 나와 동료들은 학교 및 임상 기록에 자폐증에 대한 언급의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자폐증이 한국에서는 드문 장애라고 말했다. DSM이 정의하는 의미에서 자폐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이 중간 규모 도시에 사는 8~12세 아동을 (5년 동안) 5만 명 넘게 평가했을 때, 유병률이 2.6퍼센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뉴저지의 자폐증 유병률 추정치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348쪽
“광범위한 신체적 증상을 겪는 수많은 사람이 심리학에 속하는 치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환자와 의사가 공모해 신체를 정신에서 분리하고 신체 질환을 ‘진짜’로, 정신 질환을 다소 허구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분리가 바로 낙인의 원천이며 정신건강 관리의 장애물이다. 사실 미국에서 의료화는 의사들이 ‘신체화’라고 부르는 현상을 부추긴다.” -396쪽
“‘스펙트럼’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뚜렷이 구별되는 별개의 정신 질환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과학적 연구들과 일맥상통한다. (...) 성별을 이원체가 아닌 연속체로 바라보고 자폐증을 스펙트럼으로 보는 신경다양성 운동과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같은 사회운동에 부응해 DSM 제5판(2013~현재)은 차원적 채점 요소를 추가했다.” - 477쪽
“이 책에서 나는 낙인이 낙인찍힌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은 판단임을 보여 주려고 노력했다. 낙인은 그것을 찍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병을 앓거나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가혹한 도덕적 판단의 불빛을 비추고는 그 사람이 만들어 낸 그림자만을 보며 그것이 실재라고 오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 그림자는 대체로 낙인의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 따라다닌다. 그림자는 떨쳐 낼 수 없는 제2의 자아처럼 그 사람의 연장된 부분이 되어, 본인조차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4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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